스타일룸 탄생기
왜 스타일룸이라는 서비스가 탄생했어야 했는지, 그 이야기를 해보려구요.
저는 IT업계에서 기획자로 일해온 사람입니다. 옷은 남들만큼은 좋아하는데 패피까지는 전혀 아니고, 시즌마다 무신사나 29CM, ZARA나 좀 둘러보면서 편하게 입을 만한 거 고르는 정도? 에이블리는 솔직히 사용하지 않았구요. 그런 제가 지금 AI 패션 서비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세상 참 내일이 어찌될지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저를 패션 쪽으로 끌고 온 것은, 오래된 친구 하나입니다.
친구의 에이블리 낑낑기
친구는 원래 오프라인에서 인테리어 소품 셀러를 했어요. 작은 매장에서 예쁜 소품들 큐레이션해서 파는 가업을 이어받았죠. 근데 고민고민을 하더니 어느 시점부터 패션 쪽으로 갈아탔습니다. 오프라인 비즈니스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온라인으로 판로를 옮기면서 상품 카테고리도 바꿀 결심을 한 거였어요. 센스있고 잘 하는 친구였는데, 오프라인이 진짜 어렵긴 한가봅니다.
친구가 에이블리에 입점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는데, 만날 때마다 상세페이지 만드느라 죽을 것 같다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이 친구가 원래 온라인이랑 크게 친하지 않은 스타일이거든요. 새로운 서비스 깔아보고 가입하고 이런 거 되게 귀찮아하고 어려워하는, GPT랑은 고민상담만 하는 타입. 근데 에이블리는 오프라인 매장이 아니니까, 상품 올리려면 결국 사진이 전부잖아요.
"네가 입고 찍으면 안 돼?"
"……🤐"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손님이 직접 와서 물건을 보고 만지니까 사진이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았을 텐데, 온라인은 사진이 곧 매장이니까요. 갑자기 사진작가 겸 모델 섭외 담당 겸 포토샤퍼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 친구한테는 꽤 막막했나 봅니다. 스스로 모델이 될 자신은 추호도 없었구요.
"야 내가 한 장 만들어줄까?"
어느 날 카페에서 같이 각자 일 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노트북 앞에서 사진 가지고 끙끙대고 있더라구요. 옷 사진은 있는데 모델이 입고 있는 이미지가 없으니까, 상세페이지에 올릴 게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어요.
친구는 AI로 이미지를 직접 만들어볼 생각은 못 하고 있었어요. "야, 요즘 AI로 모델 착용 사진 같은 거 만들 수 있거든? 내가 해줄게 이미지 한 장 줘 봐."
가벼운 마음으로 덤볐습니다.
제미나이한테 옷 사진 주고 "이거 모델이 입고 있는 이미지 만들어줘" 했더니 — 뭐, 한 장은 나오긴 나왔어요. 근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한 장만 필요한 게 아니거든요. 상세페이지에는 최소 5장, 많으면 10장 이상이 필요한데, 제미나이랑 채팅으로 싸워가면서 한 장 한 장 뽑아내려니까 돌겠더라구요. 옷이 계속 쪼끔씩 다르게 나오거든요. 그리고 모델이 — 어떻게 말 해야 하나 — 에이블리에서 보는 그 여리여리한 한국 모델 언니들 느낌이 절대 안 나옵니다. 뭔가 어색하고, 뭔가 외국스럽고, 뭔가 비율이 안좋은, 아니면 예쁘긴 한데 저 AI입니다 하고 써붙인 것 같은 이미지가 나와요.
그러면 서비스 쓰면 되지 않나?
그래서 유명하다는 AI 의류 촬영 서비스들을 찾아봤습니다. 몇 개 써봤어요.
결론부터 말하면, 역시나 모델이랑 배경이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일관성이었어요. 어떤 때는 "오 이거 느낌 좋은데?" 하는 결과가 나오는데, 바로 다음 장은 말도 안 되게 나와버리는 거예요. 디테일이 사라져 있거나, 모델 체형이 갑자기 달라져 있거나. 그러면 결국 괜찮은 이미지 나올 때까지 계속 돌려야 하는데, 이게 일하는 시간을 아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잡아먹더라구요.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
친구한테 "이거 써봐" 하고 권하기가 좀 그랬습니다. 아직 AI랑 안 친한 애한테 이런 복불복 서비스를 쥐여주면 두 번 다시 안 쓸 게 뻔하거든요. 특히 우리 장사꾼의 따님은 이거 손해다 싶으면 가차없는 DNA를 가지고 계셨거든요.
직접 만들자
이쯤 되니까 기획자의 직업병이 올라왔습니다.
"이거 내가 기획하면 이렇게 안 만들텐데."
동료 개발자한테 부탁했습니다. "나 이런 거 만들고 싶은데, 같이 해볼래?" 다행히 같이 해준다고 해서 프로토타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신경 쓴 건 세 가지였습니다.
1. 옷이 바뀌면 안 된다
당연한 것 같은데 AI한테는 전혀 당연하지 않은 일입니다. 모델의 자세나 배경을 바꿨는데 옷 색이 미묘하게 달라져 있으면 — 그 순간 못 씁니다. 셀러한테 사진은 곧 상품이니까요. "대충 비슷하게"가 아니라 "정확하게 그대로"여야 했습니다.
2. 한 장이 아니라 여러 장
상세페이지에 한 장만 올리는 셀러는 없습니다. 정면, 다양한 자세, 측면, 상반신, 다른 배경 — 최소 5장에서 20장. 이걸 한 번의 과정에서 쭉 뽑아낼 수 있어야 의미가 있었어요. 한 장 만드는 데 10분 걸리면 10장에 100분인데, 그러느니 촬영하는 게 낫잖아요.
3. 에이블리에 올려도 어색하지 않은 모델과 배경
이게 제일 어려웠어요. 해외 서비스들의 모델은 대부분 외국인이거나 외국풍 동양인이고, 포즈도 분위기도 한국 패션 플랫폼이랑 안 맞거든요. 한국에서 옷을 파는 건데 모델이 한국 스타일이 아니면 아무리 잘 나와도 쓸 수가 없으니까.
첫 번째 반응: 욕
프로토타입 만들어서 친구한테 줬습니다. "써봐."
개 욕먹었습니다.
"이게 뭐야" "모델 왜 이래" "배경 구려" "옷이 왜 달라져" "이럴거면 내가 직접 찍지"
네네 알겠습니다. 수정합니다. 그리고 또 줬습니다. 또 욕먹었죠. 또 수정했구요.
한 서너 바퀴 돌았을 때쯤, 친구가 처음으로 욕이 아닌 말을 했습니다.
건설적인 피드백의 시작이었습니다.
친구의 미감을 빌렸습니다
결국 제가 잘 모르는 건 친구한테 물어봐야 했어요. "어떤 모델이 좋아?" "이 배경 어때? 필쏘굿?"
친구의 미감을 도움 받아서 느낌 좋은 AI 모델들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1,300명이 넘어요.
무난한 스튜디오 배경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친구가 계속 요구하더라구요.
"카페에서 친구가 찍어준 것처럼 나오는 건 없어?"
"길거리 스냅처럼 나오는 거?"
"거울 셀피 느낌은? OOTD 있잖아."
"해외 여행 컨셉은?"
처음에는 "아 그거까지 하라고?" 했는데, 만들어서 보여줄 때마다 "오 이거 좋다" 하니까 점점 신이 났습니다. 카페샷, 길거리샷, 거울 셀피, 유럽 도시 컨셉, 일본 거리 컨셉, 사막, 들판, 해변, 설원 — 진짜 돈 많이 들여야 하는 해외 로케이션 배경들까지 미친 듯이 만들었어요. 지금 배경 테마가 2,500개가 넘는 건 다 이 친구 때문입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스타일룸은 아직 완벽하지 않습니다. 특정 핏은 재현이 어려울 때가 있고, AI가 때때로 태업을 할 때도 있고, 모델의 포즈도 더 다양해져야 합니다. 근데 방향은 맞다고 생각해요.
친구가 로케이션 촬영 한 번 하려면 수백만원 넘게 들었을 비용이, 스타일룸에서는 몇 분 만에 해결됩니다. 같은 옷으로 배경도 바꾸고, 모델도 바꾸고, 포즈도 바꿔서 여러 장을 한 번에 뽑을 수 있구요.
더 중요한 건 — 촬영 비용 때문에 옷 사진만 올리던 친구가 이제는 모델이 입고 있는 분위기 좋은 피팅샷을 딸깍딸깍 업로드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에이블리 탑 셀러들의 상세페이지를 좀 분석해 봤는데요, 잘 나가는 셀러들일수록 야외나 카페 같은 로케이션 배경을 적극적으로 쓰고 있더라구요. 관심 있으신 분은 스타일룸 인사이트에서 확인해보세요.
One more thing
제가 패션 셀러들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는 게 가끔 좀 낯설긴 합니다. 근데 생각해보면, 니즈가 있는 곳에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가는 거잖아요. 친구한테 필요한 게 있었고, 제가 그걸 기획할 수 있었고, 알고 보니 친구만 필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아직 초기 서비스라 부족한 점이 많지만, 너무 예쁜 옷을 들고 오셔서 진짜 미감 끝장나는 샷을 만들어가는 셀러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거든요. 와.. 우리 서비스 이렇게 쓰신다고? 할 정도로.
온라인 의류 셀러분들이라면 스타일룸 한번 써보시면 좋겠습니다. 100원 이벤트 하고 있으니까요 부담없이 오세요!!